육견록 개 키우지 말라 2016/02/05 01:46 by 수도원

한 1년여쯤은 주위에 강아지를 키워보라 퍽도 권했다.
친구들이 개 키워보니 좋더냐 물으면 좋더구나 적극 긍정하고
애들 정서에도 좋다니 댁도 키워보렴 부추겼던 것.
헌데 2년쯤 되어갈 무렵부터는 결코 권하지 않게 되더라.
본질적으로 인간과 짐승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종에 대한 박애는 찬성하나 도를 넘는 지나친 귀애는 인간에게든 짐승에게든 좋지 않다.
강아지를 가리켜 '이 아이는..' 뭐 이런 표현 듣기 거북하고 싫다.
함께 듣는 사람아이가 있다면 내가 개인가 싶기도 할 것이고.
사람한테 하듯 뽀뽀하고 그러는 것도 남들 보기 민망한 듯싶고.
..라고 원칙적으로 부르짖는 편인데 문제는
내심 강아지에 대해 품는 나의 마음가짐은 그보다 더할 수도 있겠단 것.

자녀 두신 분들 한결같이 하는 말씀이 강아지 키우는 거나 애들 키우는 거나 똑같다고들 한다.
자식 같은 강아지, 자식처럼 키운 강아지란 소리는 흔하다 못해 당연히 들린다.
분리불안 비슷하게 엄마 하나 바라보듯 목놓아 주인 기다리는 추종이며
장난감에 반응하고 재롱 떠는 강아지의 모양새는 갓난쟁이 노는 모습과 매한가지 아니던가.
자식이란 부모 앞세워 보내는 불상사가 없는 한 통상 내 후대를 이어갈 존재다.
이름 석자 남길 유명짜한 인물 아닌 담에야 자손이라도 남겼다면 인간으로 태어난 사명은
완수한 셈이며 당장 오늘 비명에 갈지라도 그는 성공한 인간이다.
나보다 멀리 길게 살아갈 자녀가 있기에 죽음 앞에 초연하고 여한이 없다.
그러나 강아지는 잔여 수명 바닥인 상늙은이 아닌담에야 웬만하면 주인보다 빨리 죽는다.
자식으로 여긴 강아지가 부모 앞서 가는 것이다.
나보다 앞서 갈 운명임을 뻔히 알면서 자식을 키운다는 것-
해서 육견 2년을 채워갈 무렵에는 주위에 개 키우란 소리 함부로 안하게 되더라.

햇수로 5년째 되는 지금껏 이 아이 어쩌고 소리 안해봤고
고가의 사료도 먹인 적 없고 옷가지도 절대 안입히고
애견미용 같은 건 더군다나 노노노지만
내가 외박하지 않는 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춥든 덥든 결코 산책을 거른 일 없다.
아무리 바쁘고 피곤하고 힘들어도, 술 퍼마시고 필름 끊겨도 꼭 산책은 시키고 목욕도 시킨다.
(가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나는 기억이 없는데 함께 산책하고 들어와선
비틀비틀 졸면서 강아지를 씻기더란다.
산책하면 무조건 씻기니까 목욕도 거의 거른 적 없는 셈.
물론 비싼 애견용 샴푸네 뭐네 그런 거 없다.
그냥 사람 머리샴푸나 바디샴푸, 것도 없으면 일반비누로 씻긴다.
털도 내가 직접 이발기로 밀어준다.
밥은 하루 한끼 반 정도 주는데 왜 한끼 반이냐
한끼는 온전히 개밥으로 조제해 주고-
사료에 더해 구운 닭가슴살을 3/5토막쯤 잘게 잘라준다. 고구마 등이 있으면 보너스로 섞어주기도 하고.
반끼는 사람 먹는 음식 간식삼아 주니 그리 셈했다.
햄도 주고 생선도 주고 대중없다. 꼭 피하란 음식 빼고 가림없이 주는 편.

잠도 함께 잔다.
잘 시간이 되면 조용히 곁으로 다가와 시위를 벌인다. 얼른 자자고.
잡종이라 그런지 외국품종처럼 폭풍애교 같은 거 없어서 이불 속으로 파고들고 뭐 그러진 않으나
꼭 사람 발치에서 사람 얼굴쪽으로 엉덩이를 두고 잔다.
내가 기상해서 나가지 않는 한 강아지도 결코 방 밖으로 안나간다.
어쩌다 집안에서 언성이 높아져 분위기 험악해지면 강아지도 불편한 기류를
대번에 느끼고선 근심스런 눈빛으로 주인 심기를 살핀다.
그냥 다녀올게 하고 나가면 긴 외출임을 알고 터덜터덜 다른 식구에게 '의탁'하러 가고
금방 다녀올게 하고 나가면 짧은 외출임을 알고 현관 바닥에 앉아 마냥 기다린다.
10분 외출하고 돌아와도 요란하게 반겨준다.

이따금 산책과 병행해서 내 운동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내 운동이라 함은 5킬로 런닝- 보통 22분 정도 걸린다.
8개월쯤 되었을 무렵인가 처음 데리고 뛰어보니 거뜬히, 오히려
나를 에스코트하며 완주하기에 어찌나 기특하던지.
소형견에겐 과한 운동이 아닐까 염려했건만 짐승은 짐승인갑다 싶더라.
동네 뒷동산에도 자주 데리고 다니는데 산길 계단을 부리나케 잘도 뛰어오른다.

두 살 즈음 큰 사고를 당해서 안락사시켜야 되는 거 아닌가 노심초사했거늘
천만다행스럽게도 건강을 회복해서(수술 뒤 재활 차원에서 위해 산에 다니기 시작)
지금도 여전히 나와 즐겁게 걷고 뛰고
그렇게 정말 강아지는 자식이 됐다.

만약 10여년 뒤 우리 강아지가 나를 떠나간 후 이 글을 다시 들춰보게 되면 얼마나 가슴이 미어질는지.
강아지야 나는 많이 보고 싶은데 너도 쥔님 보고 싶니? 응?

앞서 갈 운명임을 알면서도 키우고 싶나?
개 키우지 말라.
절대로.





덧글

  • 2016/02/05 09:34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2/05 15:4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남두비겁성 2016/02/05 09:50 #

    키운거 16년, 떠나보내고 10년
    지금은 그냥 그리워요.
  • just me 2016/02/05 10:05 #

    아가때부터 길러서 성견되고 2년째인데... 벌써부터 문득문득 서글퍼집니다.
    변한 모습 볼때는 더 마음이 아파요.
  • 오춘기 2016/02/05 10:24 #

    저도 반려견 먼저 떠나보냈는데, 이별이 정말 맘 아프더군요.
    반려견 새로 맞이하고 싶어도 내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나보다 먼저 갈 운명이란 걸 아니, 그게 두려워서 마음먹기도 쉽지 않네요.
  • 2016/02/05 15:4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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