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2018/08/02 15:31 by 수도원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란 오랜 격언.
내가 이전까지 속해있던 사회나 조직의 통념, 상식과 맞지 않아도 현재 속한 집단의
룰을 따르고 존중해야 된단 의미일 것이다.
여기엔 대체로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지만..'이란 수식어가 내심 따라붙는다.
뭐 이 따위냐 싶어도 울며겨자먹기로 따를 수밖에, 존중할 수밖에 없단 뜻이다.
로마제국 치세로부터 전해져내려왔다는 이 속담은 그러나 그렇게만 이해하긴 곤란하다.
문명과 야만이 극명하게 대립되던 고대, 이웃 세상과 확연한 문화적 차이를 일궈낸 로마의 법을 따르란 것은
억울하고 어쩔 수 없는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영광으로 봐야 된다.
법이고 뭐고 없이, 사회 시스템 자체가 없는 자들에게 로마법을 준수하란 것은 문명인으로 살아갈 기회를,
특혜를 준 것이나 다름 없다. 감히 야만에 머물러 있던 누군가가 함부로 평하고 폄훼할 수 없는,
로마법 테두리내에 처하게 된 상황을 그저 감사해야 될 일인 것이다.

허나 반대로 로마인더러 야만족의 룰을 따르라고 한다면, 즉, 보다 상급사회, 진보한 집단의 룰을 따르던 이에게
하급의, 저속한 집단이 만든 룰을 따르라고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억울하고 자존심 상하고 부조리한 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상대가 로마라면 기꺼이 따르고 배우겠지만, 야만이라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문화상대주의적 측면에서 진보야만의 여부를 떠나 존중받아마땅하고 뭐 이런 차원의 얘기가 아니라
로마법을 따르란 논리를 갖다붙여 부조리에 조아리게끔 만드는 폐단을 지적하는 것이다.

요즘 예체능 전공자들과 일을 하게 되면서 느끼게 된 점인데
사실 우리나라 치하에서 예체능계열은 루저에 가깝지 않나. 
전공자 본인들은 발끈할 소리고 미안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수업 안 듣고 레슨이나 받으면 대학간단 생각으로 살아온 부류 아닌가.
오래 전 내가 교직실습을 나갔던 때 회식 후 동료 교생들과 노래방을 간 일이 있다.
그 자리에 나보다 한 살쯤 아래 체육과 교생이 있었는데 정말 활달하게 잘 놀더라.
그래서 내가 칭찬 겸 부러움 겸 한 마디했더랬다. '오~ 역시 체육~'
이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가 '그런 말 제일 싫어한다'라고 정색을 하더라.
순간 머쓱해져서 '아, 네..' 하고 말았는데 참..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그가 왜 정색을 했는지 짐작을 할 것이다.
그는 역시 체육..이란 내 말에 그의 컴플렉스가 만들어낸 수식어를 보태 이해한 것이다.
'역시 공부와 무관한, 운동해서 대학 온 놈이라 다르구나' 라고.

드라마 등에서 예술 방면의 직업, 혹은 지성이 부족할 것으로 보이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의 배경을
치장할 때 빠지지 않는, 상투적인 설정이 으레 있다.
의대 다니다 때려치고 연극이 좋아서 연극한다, 변호사 때려치고 농사짓는다.. 뭐 이런 식.
공부 좀 하면 일단 공부시키는 게 우선이지, 공부머리 남부럽잖은데 운동시키고 음악시키고
우리나라는, 우리나라 부모들은 그러지 않는다. 정 좋으면 드라마 주인공처럼 내가 나중에 그리 전향하면 되는 것이고.

사정이 이렇다보니 우리나라 예체능은 서울대 출신이라 한들 지성면에선 그닥 별볼일 없다.
과장 아주 약간 보태서 우리나라 예체능 전공자들의 99.99퍼센트는 성적 하위 50퍼센트 미만에 속한다.
아니 30퍼센트 미만일 수도 있겠다.

그런 이들이 만든 시스템을 따르자니... 로마법을 따르란 말이 문득 떠올랐다.
내가 로마고 그들이 야만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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